해군잠수함사령부 통번역병
(1) 부대 지원 계기
저는 해군 통번역병으로 근무 중입니다. 군대라고 하면 조금은 부정적인 이미지가 있고, 20개월(육군은 18개월, 공군은 21개월)을 그냥 버리는 느낌이 다들 있잖아요. 훈련 때문에 다치고, 사람 때문에 힘들고 이런 군대에서만 겪는 힘든 일을 조금은 피하고 싶기도 했어요.
저는 그런 게 싫기도 하고 군대에서 다양한 경험을 해보고 싶어서 통번역병에 지원했습니다. 육군이나 공군 어학병이 아니라 특별히 해군 통번역병을 지원한 이유도 있습니다. 통번역병은 말 그대로 통역과 번역을 하는데, 해군은 타군에 비해 국제 행사와 연합훈련이 많아서 실제로 영어를 많이 씁니다. 타군 어학병은 일반 행정병처럼 일하는 경우도 많다고 하는데, 저희는 배치되는 부대별로 약간은 상이하지만, 그래도 영어를 쓸 기회가 많아서 새로운 경험을 해보고자 지원하였습니다.
(2) 입대 시점 및 그의 선정 기준과 추천하는 휴학•입대시기
저는 2023년 3월 입대를 했습니다. 통번역병은 매달 뽑지 않고, 1년에 몇 번만 뽑기 때문에 휴학 시기와 모집 일정이 겹쳐서 저는 3월에 입대를 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반수로 서울대에 와서 1학년을 마치고 바로 입대하였습니다.
제가 가장 추천하는 입대 시기는 1학년을 마치고 난 2, 3월입니다. 미필 남학생 분들에게 군대는 영원한 숙제와 같아서 오히려 군대에 입대한 사람들보다 더 스트레스 받는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 군대를 안 가고 2학년을 다니다 보면, 학과 공부에 치이면서 군대는 언제 가지 막 이런 고민을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어느 정도의 학교 생활을 즐기고, 군대를 갔다 오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1학년 끝나자마자 직후는 조금 추천하지 않는 것이 겨울 방학 동안 추억을 못 만드는 것도 있고, 겨울 훈련소는 너무나 춥기에 조금은 그래도 날씨가 풀린 2, 3월을 추천합니다.
1학년을 마치고 입대하는 것을 추천하는 이유
(3) 본인의 전공을 살려 지원했는지와 입대 시 인정되는 전공/자격증 정보
특별히 전공을 살린 것은 아니고 어학 능력을 살려서 지원하였습니다. 해군 통번역병의 경우 특정 전공이 유리하지는 않고, 면접이나 시험에서도 통역, 번역, 영어 말하기 능력만을 평가하기 때문에 전공은 크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실제로 근무하고 있는 통번역병을 보면 문과부터 이과까지 전공은 상당히 다양합니다. 저 같은 경우는 아동가족학전공이라는 생소한 전공이다 보니 면접에서 전공에서 무엇을 학습하는지, 왜 그 전공을 선택했는지 등에 대한 질문을 받았습니다.
해군 통번역병 시험
(4) 지원 및 훈련소 입소과정과 특기 또는 자대 배치 과정
해군은 모두가 진해에 위치한 해군교육사령부 기초군사교육단 신병교육대대(신교대)에서 훈련병 생활을 거치게 됩니다. 해군에도 다양한 직별이 존재합니다. 그 중 일반 직별로 들어오실 경우 입소 후 시험과 여러 점수를 합산하여 우선 자신의 직별(갑판, 추기, 무장 등)을 가지게 됩니다. 특정 직별을 입소 전에 부여받으면 이 과정은 생략됩니다.
훈련소 말이 되면, 자신이 갈 수 있는 부대의 목록을 보여주고, 지망을 선택하게 됩니다. 선택 이후에는 전산 배치로 가는 부대가 정해집니다. 해군은 공군과 달리 훈련소 성적이 높은 순으로 원하는 부대를 배정받지 않고, 무작위 전산 추첨으로 결정됩니다. 즉 1지망이 안 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또한 부대 목록은 보여주지만, 각 부대별 TO는 보여주지 않습니다. 해군 통번역병과 같이 육상근무가 아닌 함정근무의 경우에는 훈련소 수료 이후 특기학교에 이동한 후 구체적인 탑승하게 될 배를 정합니다.
(5) 일과 및 개인 정비 시간
[일과]
6:15 기상
7:10 아침 식사
8:30 사무실 출근
: 잠수함사의 경우 규모가 큰 부대(육군 기준으로 사단급 부대)라 사무실까지 거리가 있어(도보로 20분 정도) 8:30에 일과 시작
11:30 점심 식사
16:00 퇴근
(수요일은 전투 체육 시간이라 13:30 퇴근)
[개인 정비 시간]
17:10 저녁 식사 후 개인정비시간
21:00 청소
21:30 점호 후 개인정비시간
23:00 취침 (주말엔 24:00)
(6) 현재 맡은 보직과 실제로 수행하는 업무
해군 통번역병은 부대별로 조금씩 수행하는 일이 상이합니다. 해군 통번역병은 전국에 극소수로 존재하는데,
70-80%는 해군사관학교(해사) 계룡대 미래혁신연구단(1명)
잠수함사(2명) 교육사(3명) 작전사(3명)
이렇게 편제가 되어 있습니다.
제가 속해 있는 잠수함사의 경우 매년 5월에서 7월까지 진행되는 국제잠수함과정(ISETP)이 가장 큰 행사입니다. 8주 동안 외국군 수탁 교육생들이 한국에 와서 잠수함의 모든 것을 학습하는 과정입니다. 한국군 교관이 수업을 하는데, 통번역병은 그 수업을 통역하고, 외국군 교육생의 각종 행정 절차를 맡아 진행하며, 문화탐방, 실습 등에 동행하며 통역과 번역을 진행합니다.
잠수함은 국가 전략 자산이고, 일반 병은 탑승할 수 없는 보안이 강한 곳이지만, 통번역병은 실제 잠수함을 타고 항해까지 함께 가는 진귀한 경험을 할 수 있습니다. 또 매년 2회(3월, 8월) 미국과의 연합훈련 통역에 참여합니다. 약 2-3주 동안 벙커에서 미국 연락 장교의 통역 보조로 참여하여 작전을 수행합니다. 이 외에도 파견 요청이 들어올 경우 다른 부대로 가기도 하고, 미 해군의 강연 통역(핵잠수함의 추진 원리 등에 대한 강연을 통역한 적이 있습니다) 등 필요에 따라 여러 일을 합니다.
해군사관학교로 가게 되면, 사관생도의 순항훈련에 참여하기도 합니다. 순항훈련은 6개월 여동안 사관학교 4학년 생도들이 전 세계를 배를 타고 돌아다니면서 군사외교 활동과 군사 연습을 체험해보는 훈련입니다. 통번역병 역시 2-3명이 탑승하여 함께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통역도 하고, 정박지에서는 짧은 여행도 하는 재밌는 경험을 할 수 있습니다.
(7) 해당 보직의 훈련량 및 훈련 강도
흔히 생각하는 야외 훈련은 거의 없습니다. 분기별로 사격이나 화생방 훈련이 있지만, 훈련 강도가 높지 않고 부담감을 가질 필요도 없습니다.. 육군처럼 행군, 유격, 혹한기 훈련은 없습니다.
또한 부대별로 다르지만 통번역병은 대부분 사무실에서 근무합니다. 야외에서 일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UFS를 비롯한 한미연합훈련 때는 12시간 당직근무고, 야간 조의 경우 낮밤이 바뀌는 것이 힘들지만, 실내에서 진행하고, 영화에서만 보던 실제 작전을 볼 수 있고, 군사 기밀 역시 접할 수 있기에 저는 오히려 신기해서 재밌었습니다. 국제잠수함과정 역시 하루종일 수업을 듣고 통역을 하기에 강도는 있는 편입니다.
그러나, 출장을 가거나 실습 수업의 경우 인생에서 해 볼 수 없는 경험을 하는 것이기에 몸은 힘들지만 오히려 뿌듯함이 있습니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군대에서의 힘듦과는 다른 힘듦을 경험하지만, 본인에게도 유익한 경험을 하는 것이기에 오히려 좋은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8) 대략적 휴가 일수와 외출 및 면회 제도
법적으로 보장되는 해군의 연가는 27일이고, 6주 마다 2박 3일 혹은 4주 마다 1박 2일의 외박이 주어집니다. 대부분의 경우 이 외박에 휴가(연가, 위로, 포상)를 붙여서 출타를 합니다. 휴가는 연가, 위로, 포상, 청원으로 나뉩니다. 위로는 특별한 일이 있거나 훈련 후에 부여됩니다. 해군은 직별별로, 함정 근무 여부에 따라 휴가 일수의 편차가 상당히 큽니다. 함정 근무 시 출항으로 인한 피로 때문에 위로 휴가를 길게 받습니다.
통번역병의 경우 부대별로, 파견을 갔는지의 여부에 따라서도 다릅니다. 파견을 갈 경우 위로 휴가를 주고, 국제잠수함과정으로도 7일의 위로휴가(1회 제공시 최대치)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포상 휴가는 상, 벌점과 같은 양호, 과실 제도에 따라 주어집니다. 양호 10점 당 휴가 1일을 주고, 최대 17일까지(부대에 따라 19일도 가능) 받을 수 있습니다. 생활관에서 호출하는 작업, 자격증 취득 등으로 양호 점수를 쌓으면 됩니다.
외출은 한 달에 평일 2회, 주말 1회 가능하고, 자격증 시험 등의 일정이 있으면 더 나갈 수 있습니다. 면회는 진기사 소속 부대의 경우 해군의 집이라는 부대 밖 시설에서 진행됩니다.
(9) 부대 시설과 부대 위치 및 교통
저는 잠수함사령부 소속인데, 설명을 위해서는 진해기지사령부(진기사)에 대해 먼저 말씀드리겠습니다. 진기사를 전체 서울대라고 하면, 잠수함사는 단과대 하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즉, 진기사라는 엄청나게 큰 부대 안에 잠수함사가 있는 것입니다. 진기사는 진해에 위치해 있는데, 서울에서 가려면 KTX로 창원중앙역 혹은 마산역에서 내려 택시로 15-20분이면 부대 앞에 도착하게 됩니다.
부대 앞에는 다양한 식당들이 있어 평일 외출 시에는 선임, 후임과 같이 밥을 먹으러 나가기도 합니다. 진해는 3월 벚꽃 개화 이후 군항제로 유명한 곳인데, 군항제의 유명한 명소들이 진기사 정문 근처에 위치해 있습니다. 또한 택시나 버스를 타서 조금만 나가면 석동이나 창원으로 나갈 수도 있는데, 더 많은 편의시설들이 존재합니다. NC 파크 구장등과 같이 더 많은 시설이 있어 주말 외출로 야구를 보러 가는 경우도 있습니다.
(10) 자신이 군대에서 한 자기계발과 추천하는 자기계발 활동
군대에서 자기 계발을 하면 부대에 따라 조금씩은 다르지만 휴가를 주는 경우도 있기에 저는 자기 계발과 휴가를 동시에 노리며 하고 있습니다. 자격증은 지금 텝스, 토익 같은 영어 공인 성적들의 유효 기간이 만료가 되어서 다시 공부 중입니다. 또 사회조사분석사라는 국가공인자격시험이 있는데, 내년 1차 시험을 위해 공부 중입니다.
군대에서는 필연적으로 책과 조금 가까워집니다. 그래서 저는 다양한 책을 읽고 있습니다. 리트도 생각하고 있기에 어려운 책을 읽으면서 미리 대비하는 것도 나쁘지 않습니다. 군 내에서도 자기 개발을 장려하고 있고(군 원격 강좌 수강), 이에 따른 보상도 해군본부 차원에서 장려하고 있는 분위기입니다. 저도 그래서 나라사랑포털이나 다양한 공지사항을 확인하면서 코딩 교육 등 다양한 분야에 도전 중입니다.
또한, 저희 부대는 사지방(사이버지식정보방)이라고 컴퓨터를 쓸 수 있는 공간이 있어서 편하게 원격 수업을 듣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부대에 설치가 되어 있어서 개인 정비 시간이나 야간에 원격 수업을 들으면 됩니다. 저는 수업을 들을 때 아이패드를 무조건 사용하는데, 전자기기 반입에 제한이 있어서 아쉽게 필기하거나 타이핑하면서 수업을 듣고 있습니다. 군대에서는 본인이 의지가 있다면 충분히 학습을 할 수 있는 시간을 만들 수 있기 때문에(물론 엄청난 의지가 있어야만 하긴 합니다) 그 시간을 활용하면 공부할 수 있습니다.
(11) 복무 중이나 전역 이후에 복무를 통해 얻을 수 있는 혜택
저도 아직 전역을 하지 않아서 정확히는 모르겠는데, 통번역병 업무 자체가 하나의 이력이 될 수 있습니다. 군대에서 하는 대부분의 활동은 사실 사회에서 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저희는 작전, 군사 용어를 위주로 사용하기는 하지만 계속 번역과 통역을 하기에 영어 실력이 느는 것이 느껴집니다. 실제로 제가 UFS(한미연합훈련) 기간 동안 3주를 계속 미군 장교의 통역이 되어 보좌를 한 적이 있는데, 하루종일 영어만 쓰다 보니, 한국어보다 영어가 더 먼저 나오는 기이한 경험을 하기도 하였습니다. 이런 걸 바탕으로 영어 능력을 키워 오픽, 토플 등 원하는 영어 시험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어 간접적인 스펙을 만들 수 있습니다.
또 저희는 방산기업에 방문할 경우 특정 기술이나 무기체계에 대한 해설을 진행하고, 기업에서 나온 바이저를 돕기도 하는데 이러한 경험은 해외 영업이나 마케팅 등 직무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색다른 무기가 될 수 있습니다.
또 모든 통번역병에 해당되지는 않지만, 통번역병의 직무 특성 상 외국군과 상대하는 경우가 많고, 국위선양에 기여하기에 사령관급 표창과 같은 훈장을 받는 경우가 있습니다. 저 역시 국제잠수함과정 이후 소장급 표창을 받았는데, 이 역시 전역증에 기록이 남아 입사 과정에서 좋은 인상을 남길 수 있습니다.
(12) 군 생활을 하게 될 후배에게 하고싶은 조언
군 생활은 사실 힘들 수 밖에 없습니다. 내가 아무리 좋은 부대를 가고, 원하는 일을 한다고 해도 힘들 수 밖에 없습니다. 사람 때문에, 마음대로 할 수 없기에 여러 이유로 좌절을 경험하고 포기하고 싶기도 합니다. 우리가 서울대인이기에 좋은 점도 있지만, 안 좋은 점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군 생활은 우리 삶의 극히 작은 일부입니다. 지금은 이게 다인 것 같지만, 긴 인생에서 군생활은 점에 불과합니다. 이 마음으로 군 생활을 하면 훨씬 수월할 겁니다. 군대로 꺾이기에 우리는 너무 잘 살아왔잖아요.